먼저 양명은 주자의 학문을 갈고 닦았고, 격물 공부에 대해 큰 흥미를 느꼈다.
한번은 친구와 함께 뜰 앞의 대나무를 마주하고 격물을 시작했다.
둘은 하루 종일 대나무를 마주 보고 깊은 생각에 잠겼다.
그러나 결국 아무것도 얻지 못한 채 친구는 삼일 만에 병이 나 누워버렸고, 양명 자신도 일주일 만에 눕고 말았다.
그런데도 대나무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그 자리에 그대로 서있었다.
대나무는 역시 대나무였고, 그는 그일 뿐이었다.
아무나 성현이 되는 것은 아닐 터, 성현은 따로있는것 이로구나! 이렇게 깨달은 양명은 학문을 버리고 산에 들어가서 도나 닦아야겠다고 맘을 먹었다.
또 그가 산에 들어가려는 데는 다음과 같은 배경도 있었다고 전해진다.
즉 양명은 스무 살에 지방에서 보는 향시에 합격했고 곧이어 회시 에도 응시했으나, 떨어지고 말았다.
4년 후에 응시했으나 또 낙방했다.
자신의 재주만 믿고 남을 가볍게 여긴 결과였다.
게다가 때마침 폐병까지 걸렸고, 그래서 산속에 들어가 양생법을 공부하게 되었다.
철학논술 Q 어린 시절 양명의 서당 선생은 책을 열심히 읽으면 높은 벼슬에 오를수 있다는 판에 박힌 소리만했다.
오늘날 학교에서도 열심히 공부만 하라고 하는데, 그 목적은 도대체 어디에 두고 있는 것일까?
문무를 겸한 덕장 그는 몇몇 친구들과 함께 용천사에서 시 모임을 조직하여 매일 시 읊는데 도취되었다.
2년째 되던 해에 서울로 돌아온 그는 나라의 변두리 국경 지방이 위태롭다는 사실을 알고 무예를 닦는 한편, 병법에 관한 책을 두루 읽었다.
무관으로 크게 성공해볼까도 생각했던 양명은 결국 이 방면에서 꿈을 실현하지는 못했다.
몇번의 실패를 거치고 나자 양명은 몸과 마음이 지치고 말았다.
학문이나 문학에 대한 공부가 그의 커다란 마음을 채워주지 못하고 무예 방면에서도 특별한 소질을 발휘하지 못하게 되자 방황하기 시작한 것이다.
다시 마음을 가라앉히고 독서에 정진하기 시작한 그는 스물여덟이 되던 해에 비로소 진사시험에 합격했다.
우여곡절을 겪던 그가 서른다섯 살 되던 해였다.
무종 자리로 발령을 내고 말았다.
용장은 귀주성의 서북쪽에 자리하고 있었는데, 첩첩이 쌓인 산과 우거진 산림으로 뒤덮인 곳이었다.
독벌레와 질병이 만연할 뿐만 아니라 오랑캐들이 모여 사는 지방으로 말이 잘 통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 처럼 험악한 환경은 도리어 그를 깊은 사색으로 이끌었다.
양명은 숲속에서 초막을 짓고 살다가 다시 암굴로 들어가서 살았다.
그 당시 그곳 야만족들은 한인 이 오면 여러가지 꾀를 내어 죽이려고만했다.
그러나 그들은 양명의 성실하고 인자한 성품에 감동하여 결국 그를 따르게 되었다.
양명은 원주민들을 잘 다스려나가는 한편, 돌관을 만들어 그 위에 앉았다.
누웠다 하면서 밤낮을 가리지 않고 진리를 깨우치려고 애썼다.
그러던 어느 깊은 밤, 그는 홀연히 격물치지의 도리를 깨닫고 벌떡 일어나 앉았다.
마치 꿈속에서 누군가가 그에게 일러준것 같았다.
어찌나 기뻤던지 소리치고 날뛰자 옆에서 자던 사람들까지 놀라 깨어 그 이유를 물었다.
이에 양명이 대답했다.
내가 이전에는 격물의 도리에 대해 미혹했는데 이제야 깨달았소! 용장으로 쫓겨난 지 3년 만에 양명은 장시성 노릉 가 되었다.
소년 시절에 가졌던 호걸의 꿈이 이제야 이뤄지는 듯했다.
이후 십여 년 동안 양명은 적지 않게 큰 공을 세웠는데, 먼저 변경에서 수십년 동안 활개 치던 도적 떼들을 말끔히 토벌했다.
계속해서 그 이듬해에는 번개 같은 솜씨로 신호의 난을 평정하여 도탄에 빠진 백성들을 구출했다.
쉰여섯 살에는 광시성의 전주 지방에서 야만족이 반란을 일으켰는데, 그곳 총독이 이를 막아내지 못했다.
이러한 것은 했다.” 있는 전부터 뒤에 거리) 일이었다. 아무 말을 들으시었는지 아버지에게서 막동이는 정거장 어머니께서는 밭을 작년 아주 번 여러 “장거리(*장이 봄 들은 그때까지 서는 처음 팔기로 태연하시었지만